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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언책방/책 형광펜긋기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프리랜서로 들어가는 과정을 세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

by 후언 2021. 4. 26.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서메리, 미래의창, 2019

 

제목이 심상치 않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니, 그런 것도 체질도 있단 말인가?


작가는 회사를 5년 동안 다녔다. 특별히 모난 곳 없이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잘 처리했지만 실은 회사를 다니는 것이 스스로를 굉장히 소진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답게 바로 퇴사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가는 길을 찾아보고 계획을 세운다. 얼마간 벌이 없어도 버틸 돈을 마련해놓고 출판 번역 아카데미에 등록을 해놓은 뒤, 작가는 마침내 퇴사하고 프리랜서 지망생의 길로 접어든다.

 

작가는 영문학과 출신이다. 그걸 보고 '역시, 영문학과라서 쉽게 번역가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하게도 번역가가 되는데 영문학과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만의 특이한 경험이나 경력이 있을 경우 번역가로서도 강점이 될 수 있는데 작가는 그런 것이 없어 고민하다가 블로그에 매일 일상툰을 올리기로 한다. 

 

뭐든 꾸준히, 매일매일 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아카데미를 하는 과정에도 매일 그림을 그려서 블로그에 올린다. 그렇게 쌓인 만화들은 작가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추후 정식 번역가가 되기 전에 먼저 웹툰 작가로 데뷔하게 되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책 중간중간에도 작가가 그린 네 컷 만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틈날 때마다 핸드폰에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폰 크기가 작아 이 그림을 보려면 한 번 클릭한 후 확대해야 한다. 이런 귀찮은 과정에도 불구하고 만화가 재밌고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전부 다 클릭해서 자세히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마음을 울리는 만화들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와 닿았던 게 있다.

네 컷 만화 제일 마지막 칸에 대각선으로 구분된 다른 장소의 두 사람이 있다.

대각선 위쪽엔 조회수 3을 보며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데, 대각선 아래쪽엔 '이 글 좋은데?'라고 생각하는 출판사 직원이 있다.

 

"파워블로거나 SNS 스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홍보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기회의 문은 생각보다 넓고, 누군가 날 알아봐 줄 사람이 단 1명만 있어도 성공이니까.”

- 본문 만화 중

 

이 말은 나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하루 종일 편집해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날엔 틈만 나면 유튜브 스튜디오에 들어가 조회수를 확인하곤 한다. 

내 채널이 아직 작고, 기대를 많이 갖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그렇게 된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조회수 0을 기록할 땐 실망감이 들기도 한다.

조회수가 100이 안 되는 영상들도 많다. 

그럼에도 꾸준히 업로드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또 하나 찾았다.


작가가 두 달 동안의 영어 학원 수업 후 9개월짜리 출판 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하여 기술을 배웠지만 정식으로 출판 번역이 바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찌하여 첫 단행본 번역 일감을 따고 완료했지만 다음 일감을 얻을 때까지 제2의 백수기를 갖게 된다. 그 새로운 백수기 동안 작가는 그냥 있지 않았다. 제1의 백수기를 겪었던 만큼, 언제든 제2, 제3의 백수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했고 그 기간을 대비하기 위해 1인 출판사를 세운다. 그리고 저작권이 없는 책(작가가 골랐던 책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을 번역해서 전자책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1인 출판사를 세워서 전자책을 출판했다는 결과를 놓고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중에는 누구든 할 수 있고, 나도 그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샘솟는다.

작가가 자신의 소심하고 걱정 많은 점을 강조하고 백수기 동안 느꼈던 초조한 감정을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1인 출판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프리랜서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낸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나도 작가가 느끼는 감정에 빠져들어가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나는 불가피한 사정이 생겨 퇴사하게 되었지만 그 백수생활 동안 나름 이것저것 일을 벌일 계획을 세워 놓았었다.

그런데 그 계획들이 거의 다 혼자서 하는 일들이라, 내가 게으름에 빠지면 블랙홀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이기 때문에 당장 나에게 돈을 벌어다주진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돈의 압박, 나태함에 대한 자기 질타의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함의 압박을 주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 위로받았다.


책 속에서 작가 또한 그러한 과정 중에 있을 때가 있었다. 계속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걱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계속 시도한다. 그리고 결국은 안정된 번역가가 되어 일이 끊이지 않게 되고, 이런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책을 다 읽고는 작가의 블로그도 검색하여 들어가 보았다.

유튜브 채널도 있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아,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 순간 책에서 느꼈던 소심한 주인공에 대한 이미지는 사라졌다. 매일 블로그에 만화를 올리는 꾸준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작가 또한 인내심과 책임감에 대해 말한다.

 

"이렇게 다양한 업계의 현실을 조금씩 체험하는 동안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프리랜서에게 책임감과 인내심보다 중요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

세상에는 책임감과 인내심을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책임감을 갖춘 프리랜서, 혹은 프리랜서 지망생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마감을 성실히 지키며 맡은 작업을 성의 있게 해 낸다는 평판만 얻는다면, 당신은 업계를 막론하고 클라이언트의 섭외 1순위에 오를 것이다.”

- 본문 중


작가가 처음 프리랜서 세계에 뛰어들며 참고했던 책들, 퇴사 체크리스트, 프리랜서의 업무 프로세스, 프리랜서의 수입, 프리랜서가 된 이후의 생활까지 프리랜서에 대해 궁금했던 정보들이 친절하게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나는 프리랜서가 될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이런 길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진지하게 생각도 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회사든, 회사 밖이든 스스로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작가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렇게 직접 몸으로 부딪쳐 찾아낸 근거를 바탕으로,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를 가진 채 복숭아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불행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

나는 다만 알려 주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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