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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언책방/책 형광펜긋기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뿌리가 튼튼한 작가의 취향 에세이

by 후언 2021. 6. 5.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상상출판, 2020


다른 이들의 일기나 관심사를 보는 건 즐겁다. 평상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긴밀한 생각이나 고민, 다짐 등을 보며 저 사람도 그럴 때가 있구나 안심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가 경험했던 다양한 취미(일부는 입문만 하고 끝났던) 경험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낼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자유형을 배우지 못하고 끝났던 3개월짜리 수영강습이나,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런데이 도전, 아니면 꽤 성공적으로 즐기고 있는 영상편집 또는 정원 가꾸기 같은 소소한 취미들에 대해서 말이다. 대부분은 깊이 들어가지 않고 겉만 핥은 채 끝났지만 어쩌면 실패기로도 그것들을 한데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실천으로 옮겨보진 않았으니 생각만 하고 넣어뒀던 수많은 상념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마치 그런 책이 여기 있다. 취미 생활에 관한 건 아니고 취향에 관한 이야기지만.

소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옷 취향, 식습관, 운동, 공부와 같은 것에 대해 이 책은 온전히 한 권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에세이라고 하나 주제가 온통 ‘취향’이라는 것에 집중해 있다는 게 신선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사건보다는 작가의 내면에 더 집중했다고 느껴진다.

"나는 누군가의 커다란 생각보다 늘 이런 사소한 것들이 궁금하다. 그 사람의 작은 세계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취향적 소지품." - 본문 중

그래서 쓰여진 책이 아닐까?

 

책마다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문체는 조심스럽다. 담담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단정하고 정돈되어 있다. 마구 덤비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서 말한다. 작가의 성격이 원래 이럴까? 아니면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일까?

이런 의문은 책의 한 구석에서 답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한때는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대기'에 애썼다면, 지금은 자랑하는 게 불편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대지' 않으려는 노력이 글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는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다른 관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여름철 초파리가 쉽게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고가 아닌 아이스팩이 든 스티로폼 박스에 보관하는 일상적인 팁부터, 반신욕 시 목욕소금의 간편함, 현관 청소의 중요성,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 등에서 말이다.

 

나는 이때까지 현관 청소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내가 챌린저스 어플에서 '매일 현관 청소하기'라는 챌린지를 신청해볼까 생각해보게 된 건 이 책 때문이었다.

"주말이면 마당 쓸 듯 손바닥만 한 현관을 쓸고 닦는다. 그러면 마음도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해진다." - 본문 중

풍수지리상 현관을 깨끗하게 관리하면 복이 들어온다고 농담스럽게 말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집에 들어와서 가장 처음으로 보는 공간이기에 나를 위해 깨끗이 관리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도 언젠가는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될 테니 그날을 준비하는 것처럼, 마당 쓸 듯 현관을 쓸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좋아하는 일은 타고난 성향이자 이미 내재된 자신 그 자체이다. 나의 취향이 반영된 건 하고 싶은 일이고, 나의 숨겨진 재능이 숨어있는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을 절반 넘게 읽어나가며 작가의 '하고 싶은 일'이란 '예술가'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되고 싶은 예술가란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가깝다" - 본문 중

 

어느 책에서 읽었던 영화 <패터슨>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나와 반가웠다. (영화 패터슨을 언급한 또 다른 책은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였다)

작가는 버스 운전사이자 시를 쓰는 주인공 패터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출판이라든가 낭송회 같은 딱히 무언가 해내야겠다는 목표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패터슨은 시인이다. 출판한 작품은 없어도 시를 쓰고 있기에 시인이다." - 본문 중

무언가를 오래 갈망하면 그와 닮게 된다는 말처럼, 글의 흐름을 찬찬히 따라가던 나는 작가도 이미 예술가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느꼈다.

참, <패터슨>이란 영화는 이미 두 번이나 언급되었으니 나도 한 번 봐야겠다.

 

재밌게도 영화 <패터슨> 외에도 최근 읽은 책에서 본 것과 겹치는 부분이 나온다.

바로 '비블리오바이불리'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바로 전에 리뷰를 올렸던 [꿈꾸는 책들의 미로]에서도 비블리오주의가 나온다. 당시 문맥상만 대충 어림잡고 넘겨서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비블리오'란 그리스어로 책을 뜻하고 '바이불리'란 라틴어 어원으로 '취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비블리오바이불리'란 지나치게 많이 읽는 책 중독자를 뜻한다. 

작가는 스스로 '서적 병(Books Disease)'을 앓고 있으며, 마침내 '비블리오바이불리'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유일한 개그가 아닌가 한다. 서적 병에 걸리면 일생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을 멈추려 하지 않는단다. 

독자인 나로서는 작가의 서적 병이 영영 낫지 않기를 바란다. 쓰는 것을 평생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알고 싶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세계가 있다면 언제나 그 분야를 다룬 만화책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미지의 세계와 나를 빠르게 연결한 한 권의 만화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

이때까지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 책을 찾아볼 생각은 했지만, 만화책을 찾아볼 생각은 못 했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작가는 부러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나는 이제 부러움을 긍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달리 말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다. 그저 부러움에서 멈출 때 열등감이 생기는 거고,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면 부러움이 사라진다." - 본문 중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질투 나는 대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질투와 열등감을 좋은 에너지를 바꾸는 방법은 내가 꼭 배우고 싶은 것이다. 작가의 위 말이 내게 그 방향을 제시해준다. 

질투와 열등감에서 벗어나면 그 질투의 대상은 롤모델로 변화할 수 있다. 그게 내가 질투의 늪에 빠지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좋은 방향일 테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스스로 자신의 취향을 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멋지다. 자신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보았기에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바꾼 기록 생활]이라는 작가의 전 책에서 느꼈던 것처럼, 응원하고 싶어지는 멋진 사람이란 인상이 책을 덮은 후에도 잔상처럼 남는다.


<형광펜>

"롤모델은 정해지지 않은 인생에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 같은 존재."

 

"언제나 나를 괴롭히는 건 욕심이다. '더 잘해야 해. 실패하면 안 돼.' 내려놓는 마음은 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게 욕심을 덜어내고 나면 머리가 가벼워져 오히려 일이 술술 풀리곤 했다."

 

"내 기획에 칼을 많이 들이대는 상사나 청탁 원고를 자신의 입맛에 맞춰 몽땅 고쳐대는 의뢰인을 만날 때면 자신감은 하락하지만 고집을 부리지 않을 이유가 되어주고, 어떤 부분이 나와 달랐는지를 본다. 하지만 내가 부족했다는 맥락의 사과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과할 이유는 작업물 때문이어선 안 되었다. 내 입장에선 혼신의 힘을 불어넣은 거라서 그걸 부정하는 순간 내게 실망하게 된다."

- 새겨두고 싶은 글귀이다.

 

"살면서 '언젠가'로 미뤄두고 가끔 꺼내 보는 일이 있다. ... 누군가 그 꿈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쳐가며 준비하고 있다는 건 일단 생각하지 않고 나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시를 한 줄도 쓰지 않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현실은 잠시 잊어야 계속할 수 있다."

-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서른 살의 집]의 노석미 화가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꿈이 정말 직업이 될 때까지 계속할 방법은 현실 감각을 잊을 때다."

 

"알고 싶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세계가 있다면 언제나 그 분야를 다룬 만화책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미지의 세계와 나를 빠르게 연결한 한 권의 만화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부러움을 긍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달리 말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다. 그저 부러움에서 멈출 때 열등감이 생기는 거고,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면 부러움이 사라진다."

 

"좀 더 성장하고 싶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으면 그런 환경에 자신을 떨어트려 놓아야 한다."

- 집에만 있지 않아야 할 이유.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전력을 다해 일하고 나면 제시간에 퇴근한다 해도 피곤해서 가벼운 책 한 줄 읽는 것조차 힘에 겨워 수험 공부를 하려면 엄청난 체력 또는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니면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강력한 동기가 있어야 할 테고."

- 내가 직장을 다니며 왜 꾸준히 공부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

 

"오늘 하루 안 하면 내일 안 하게 되고 높은 확률로 몇 달 동안 계속하지 않게 된다. 만약 오늘 했으면 계속해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아무리 좋은 동네에 살아도 자기 집에만 갇혀 있으면 그 동네의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사랑하는 동네가 있다면 그곳에 살지 않아도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있다. 언제나 소유하지 않아도 소유하는 방식으로 산다."

- 전원주택단지가 있는 동네를 어슬렁거려야 하나 싶다.

 

"나는 텔레비전을 없앴고,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시간을 만들었다."

 

<참고>

- 나중에 찾아볼 영화 :  <빌리 엘리어트> <스위밍 풀>(우아한 리조트 수영) <패터슨> <다가오는 것들>

- 나중 읽어볼 책 : [도망자, 그의 지난 발자취를 따라서 건너다/악셀 산데모세] [책벌레 이야기/스티븐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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