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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언책방/책 형광펜긋기

[아무튼, 발레] 흥미진진한 좌충우돌 발레일기

by 후언 2021. 4. 30.

 

아무튼, 발레

최민영, 위고, 2018


이 책은 작년에 취미 발레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던 책이다.
작가의 발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덜아 마음이 뜨거워졌더랬다. 그 마음으로, 비록 온라인 클래스였지만 취미 발레에 한 발이나마 담그게 되었다.
요샌 또 모든 것에 의욕이 낮아진 시기였기에, 발레에 대한 열정을 다시 채워보고자 발레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저번 책 리뷰 대상이었던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를 다 읽고 온라인 발레 수업을 들었다. 최근 들어 자주 하지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스트레칭이 더 잘 되었다. 책을 읽고 의욕이 생겨서 그런가?
예전에도 블로그에 class 101의 발레핏 후기를 올린 후에 왠지 모르게 발레 수업이 더 재밌었던 게 기억났다.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아니,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다. 밤 11시가 넘어 펼쳐 든 이 책은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내 마음을 뺏았다. 졸린 눈이 슬슬 감길 때쯤, 마음만 먹었으면 끝까지 다 보고 잘 만큼 재미있으나 내일을 위해 끊고 잠자리에 들었다.

작가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곳곳에 웃긴 포인트들도 있어서 혼자서 소리 내 웃기도 했다.
알고 보니 직업이 기자였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잘 썼구나.

독서 리뷰를 쓰려면 책을 한 번 쭉 읽으며 형광펜을 긋고 메모를 한 후, 다시 책을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
바로 그게 독서 리뷰의 좋은 점이다.
난 보통 책을 한 번 읽고 다시 펼쳐보지 않는다. 아무리 좋았던 책이라고 해도, 봤던 책을 다시 보는 것보다 새로운 책을 찾아 나서는 게 좋다.
한 번만 봤던 책을 온전히 기억하기란 어렵다. 공부할 때도 여러 번 봐야만 외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게 남는 책 기억은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감동적인, 위안이 되었던, 공감이 많이 갔던, 재밌었던'처럼 두리뭉실한 느낌이다.
가끔은 읽었던 책인지 모르고 새로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서 읽다가, '뭔가 봤던 것 같은데?' 하고 그제야 알아채는 경우도 있었다.

독서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여러 번 읽으니 머릿속에서 책 내용이 정리가 더 잘 된다. 며칠 묵혀두었다가 다시 읽으면 형광펜 친 부분 말고 다른 구절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이 책도 다시 읽다 보니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꼭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읽었던 기억은 '좀 재밌었던 것 같다'라는 느낌만이 남아있었는데 이번에 읽는 동안 그때 그 감정이 다시 생각났다.

수영복처럼 생긴 일체형 발레 옷을 레오타드라고 한다.
타이즈를 입고 그 위에 레오타드를 입는데 타이즈 안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그 사실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수업 첫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속옷을 안 입고 타이즈하고 레오타드만 입는 게 맞는 건지' 망설이던 작가의 경험담 때문이었다.
발레 학원에서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발레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는 수업에 들어가는 게 부끄럽진 않을지, 수업 도중 방귀가 나올 것 같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발레에 관심이 있었으나 두려움 때문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한 가지는 남 눈치 볼 게 아니라 그냥 1년이라도 더 먼저 발레를 시작했더라면 하는 거다.

막상 첫날 수업에 들어가 보니 나만큼 통통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그때의 안도감과 허무함이란." - 본문 중


난 아직 발레 학원에 가 본 적이 없으나 처음 수영을 배우러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나 혼자 엄청 긴장하고 신경 쓰고 갔지만 정작 남들은 다른 사람에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말이다.
추후에 발레 학원에 등록하게 되면 첫 수업 전에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미리 이 과정을 거쳐간 작가의 경험담을 보면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줄 것 같다.

발레를 하면 정말 몸에 변화가 생길까?
말린 어깨, 척추측만증을 가진 내가 발레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바른 자세이다.
4년간 취미 발레를 한 작가가 말한다.


"발레를 하십쇼! 한 번만 배워보세요! 몸이 달라집니다!" - 본문 중

 

작가는 발레를 배우고 살이 많이 빠졌다. '굽은 어깨 위로 올라와 있던 승모근이 내려가고, 앞으로 나온 거북목이 위로 올라갔다'라고 간증한다.

처음엔 해도 늘지 않는 것 같고 언제쯤 나는 발레 동작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힘든 기간이 있다.
발레 동작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기다려야 한다. 작가는 6개월이 고비라고 한다.
속근육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힘이 생기고, 그때서야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된다고.
이건 어느 분야에나 마찬가지다. 유튜브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기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기다려야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 알아도 하기 어려운 것.
나는 그 기다림의 순간을 얼마나 많이 포기해 왔을까. 스쳐가는 몇 가지 생각에 조금은 씁쓸해진다.

여러 선생님들한테 배운 만큼, 발레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신선하고 웃겼다.
배우는 입장에서만 생각해봤지, 똑같은 잔소리를 계속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계속 지적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몸이 굳은' 성인들을 가르치려면 참 힘들겠다 싶다.
수강생의 동작을 눈 뜨고 견디기 어려울 때 귀를 손으로 막고 "악!" 소리를 지르는 어떤 선생님 이야기에선 나도 모르게 '풋'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발레 선생님이 수업 스트레스 때문에 얻는 두통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반짝이는 수강생들의 열정을 거부하지 못하는 발레 선생님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책 곳곳에서 물씬 느껴진다.


취미 발레인으로써 작가가 전해주는 정보도 많이 들어있다.
발바닥에 구멍이 뚫린 타이즈는 휴식 시간에 발을 꺼내거나 토싱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토슈즈를 사면 부숴야 하고 끈은 별도로 사서 달아야 하는 것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토슈즈를 신게 되는 건 먼 미래겠지만 말이다.
작가가 추천하는 마사지 도구는 책갈피로 표시해서 여기에 정리했다. 나는 폼롤러는 가지고 있어서, 종아리 풀기에 좋은 마사지볼과 홍두깨를 하나씩 마련할 계획이다.

<작가가 추천하는 마사지 도구>
- EPP 90cm 폼롤러는 큰 근육(허벅지) 이완에 좋음.
- ADS브랜드의 보라색 돌기 모양 마사지볼은 뭉친 종아리 풀기에 좋음.
- 지름 4cm짜리 탱탱볼은 종아리 아래에 깔고 움직이거나 발 지압, 깊은 엉덩이 근육 푸는 데 좋음.
- 나무 재질의 홍두깨(지름 3~4cm)를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끼고 앉아서 봉을 좌우로 누르면 종아리 알 생기는 것 방지. 작가가 경험한 종아리 마사지 중 최고의 강도라고 함.

발레를 잘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틈틈이 연습하는 작가의 미니 챌린지도 소개해본다.
엘리베이터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 발을 를르베로 서서 밸런스를 잡는다.
를르베가 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 나도 이 글을 보고 따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아라베스크는 '발레의 꽃'이라고 불린단다.

<지젤> 2막 '윌리들의 숲'마리우스프티파 안무의 <라 바야데르> 3막 '망령들의 왕국' 도입 부분은 아라베스크의 명장면이 있다고 소개된 부분들로 여기 적어 놓고 나도 찾아봐야겠다.

발레에 관한 영상은 인스타나 유튜브 채널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유튜브 채널은 발레에 대해 유익한 정보가 많다고 작가는 소개한다.

참, 그런데 작가의 발레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공연 동영상만 볼 게 아니고 바가노바 발레학교 저학년 수업 동영상을 봐야 합니다'

나중에 찾아볼 것 메모해놓기.

발레는 코어 힘이 중요하다. 나도 처음 온라인 수업을 들었을 때 복근 운동을 따라 하는데 아주 힘들었다.
작가가 들은 수업의 복근 운동 프로그램 두 가지가 소개되어있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해봐야지.
1. 15분 동안 윗몸일으키기 60개, 다리들어올리기 30개, 다리 들고 윗몸일으키기 30개, 윗몸 비틀기 40개, 다리 좌우로 교차하기 50회, 엎드려 상체 들어올리기 20개, 기본 플랭크 1분, 사이드 플랭크 각각 1분
2. 40분 바워크 후 코어운동 : 다리들어올리기 50개, 윗몸일으키기 50개, 플랭크 2~3분


마냥 유쾌해 보이는 작가도 번아웃으로 힘들 때가 있었다.
'자신이 소진될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늘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던 작가는 일에 내내 몰입하고 살다가 결국 스스로가 고갈되었고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잠적해버리고 만다. 반려된 사표로 다시 복귀를 앞둔 채 막막한 마음으로 찾은 정신과에서 의사가 말한다.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지만 세상에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만큼 중요한 직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직장은 내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곳이에요. 나는 받는 돈만큼 내 노동력을 제공하면 되는 거고요.

... 직장은 내가 일하고 돈을 받는 거니까 굳이 그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 본문 중


모든 것에 지나치게 애썼던 작가는 그제야 모든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힘을 빼기'로 한다.
발레에서도 힘이 필요한 곳에만 힘주고, 다른 데는 힘을 빼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김하나 작가의 [힘 빼기의 기술] 책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서른아홉 살에 취미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작가가 이 책을 냈을 때는 취미 발레 4년 째였다.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의 저자도 취미 발레 4년 째였는데, 우연인 걸까?
4년쯤 하게 되면 나도 발레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까?

취미 발레를 시작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보길 바란다.


<형광펜 긋기>

"몸으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에 집중하다 못해 우울하게 자기 자신을 파먹지 않나요. 하지만 진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단순한 생의 원칙에 따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요. 몸이 진짜예요."


"하지만 그는 춤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며 사람인 이상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대응해 무용계의 따뜻한 지지를 받았다."
- 공연에서 32회전 푸에테를 절반밖에 돌지 못하는 실수를 한 ABT의 수석 무용수인 미스티 코플랜드의 이야기. 멋지다.

"손으로 소품만 만들어도 재밌는데, 온몸으로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전하는 일은 당연히 그보다 최소 열 배쯤은 꿀잼 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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