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사를 마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짐을 다 옮겼다.
포장이사를 했고, 어디에 어떤 물건을 놓을지 물어봐가면서 진행했다. 하지만 그 자잘한 모든 물건들의 위치를 다 설명하기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그냥 저기 두세요"
라고 10번 이상쯤 말하고 나서, 나에게 남은 건 다시 제자리를 찾아줘야 하는 수많은 물건들이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 물건들을 당장 정면으로 마주하기엔 나는 너무 지쳤다.
—————————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 몇주 전부터 전화하고, 계약하고, 짐을 정리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어제 오전은 순조로웠다. 이사짐이 거의 다 나갈 무렵 전 집주인과 만나서 전세금을 돌려받고, 정산해야 할 돈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적극적으로 일처리를 해주셨던 친절한 부동산 사장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다.
올해들어 최고의 한파였던 어제, 새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탔다.
내가 이동하는 동안 이사갈 집은 전 세입자가 짐을 빼고, 곰팡이 핀 방 한쪽을 도배하고, 입주청소까지 진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계약한 청소업체가 도착할 시간에도 전 세입자의 이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그 때부터였던가. 삐그덕 소리가 나기 시작했던 게.
원래 집의 옵션이었으나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아 집주인에게 빼달라고 미리 말해놓았던 냉장고, 세탁기, 대리석 상, 기타 자잘한 물품들은 집에 도착했을 저녁 무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일 아침 8시에 우리 짐이 들어와야 하는데, 어떡해?"
남편이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알아봐달라고 했다.
여러 번 전화 끝에, 집주인은 내일 오전 9시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고, 다른 짐들은 부동산 사장님이 저녁 늦게 와서 대신 빼주기로 했다.
부동산 사장님이 오기 전, 남은 짐들을 모두 현관문으로 몰아두었더니 제법 되었다.
대리석으로 된 상은 남편과 내가 들어보려 했으나 너무 무거워 부동산 사장님 남편분과 우리남편이 매서운 추위에 땀 흘리며 같이 옮겼다.
기존에 있던 냉장고와 세탁기를 빼야 우리 가전제품이 들어올 수 있었다. 전화를 돌린 결과 다음날 이사짐이 들어오기로 한 오전 8시에 이사업체와 사다리차 기사분의 도움을 통해 옵션이었던 냉장고와 세탁기를 1층에 내려놓기로 했다.
어제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부엌에 앉아있으니
"똑... 똑... 똑..."
그렇다. 가지가지한다. 씽크대 수전에서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또 부동산에 연락할 일이 생겼다. 또! 저녁 10시가 넘을 무렵이라 다음날 연락하기로 했다.
—————————
오늘은 이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으나 집주인이 연락해놓았던 가전제품을 가져가는 분이 옵션이었던 전자렌지도 가져간다고 했다.
“전자렌지는 저희가 쓴다고 했는데요?”
그 분은 알겠다고 하고 돌아갔다가 다시 왔다.
“집주인한테 연락했는데 전자렌지도 저희한테 팔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냥 가져가라 하고 드렸는데 나중에 보니 계약서에 적혀져 있었다.
‘...전자렌지 옵션은 사용 후 원상태로 반납하기로 한다.’
또다시 부동산에 연락을 드려야 했다. 계약서에 적혀있는데 가져갔으니 나중에 우리가 나갈 때 전자렌지를 달라고 하지 말라고.
정말 이러다 부동산 사장님과 절친 되겠다고 남편에게 농담을 했다.
—————————
이사업체 분들이 다 가신 후 나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밥 해 먹을 기운이 나질 않아 배달음식을 시켰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났던 김치찌개.
어제 저녁, 청소가 다 끝났다는 새 집으로 출발하면서 남편은 오늘 저녁 뭘 먹을까 물었었다. 오랜 이동시간에 고달팠던 나는 나의 소울푸드인 김치찌개를 먹자고 했으나, 새 집에 도착하여 몰아치는 문제상황을 해결하느라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 머리속에서 김치찌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텅 빈 새 집에서 이사날의 정석대로 짜장면을 먹었었다.
배달앱을 켜서 새로운 집주소를 입력하고 김치찌개를 일인분 주문했다.
그 동안 나는 얽히고 설킨 머릿속을 글을 써서 정리했다. 글로 쓰고 나니 화나고 짜증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감정이 조금 진정이 됐다.
음식이 도착하고 '이것만 쓰고 먹어야지'하는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일이 있어 출근했던 남편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오고 있단다.
나는 이미 김치찌개를 주문했고 음식이 도착했으니, 올 때 먹을 걸 사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남편은 국밥을 포장해왔다.
—————————
오후엔 관리실에 가서 입주 안내를 받았고, 한전에 전화를 걸어 전입신청을 했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분이 굉장히 친절하셔서 남아있던 마음의 불편이 완화되었다.
이후 의욕이 다시 살아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짐을 정리하고, 앞으로 집을 어떻게 다듬을지에 대한 계획도 세웠다.
아직 짐정리는 많이 남아있지만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일상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챌린저스 정산 (2) | 2021.02.05 |
---|---|
평일 매일 글쓰기 1주차 후기 / 챌린저스 (0) | 2021.01.31 |
이사 후 인테리어에 대한 마음가짐 (0) | 2021.01.16 |
일요일 숙제, 몰아치는 폭풍 챌린지 완료하기 / 연필로 고양이 그림 그리기 (0) | 2021.01.10 |
백수로 산다는 것 / 챌린저스 어플 (1) | 2021.01.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