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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

언니의 최애 카페와 우리집 카페 이야기

by 후언 2021. 2. 13.

언니와는 자주 통화를 한다. 조카가 태어난 뒤로 연락이 잦아졌다.
주로 영상통화를 하는데 언니는 귀여운 조카를 보여주고, 나는 마찬가지로 귀여운 우리 개와 고양이를 보여주곤 한다.

어느 날 낮, 언니에게서 영상통화가 아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고 보니 언니는 오랜만에 생긴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보내러 가는 중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내가 잘 가는 카페가 2곳 있어. 하나는 스타벅슨데 지금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다른 카페로 가고 있어."
그 카페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15분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그 카페를 가야 하는지 언니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도 그 카페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한적한 곳, 주변은 풀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하고 푸근한 느낌의 카페일까?
"나 다 도착했어. 다음에 또 통화해."
여러 이야기 끝에 언니는 전화를 끊었다. 멋진 시간을 보내게 될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얼마 안 되어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오늘 문 안 여는 날이었어."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모처럼 생긴 자유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보내려고 산길을 운전한 언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언니는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집 근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얼마 전 언니의 집에 놀러 가서 그 카페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목요일을 피해서 금요일에 방문했다.
정말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가서야 밭과 축사가 곳곳에 보이는 시골마을에 들어섰다. 개울 위로 나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카페가 보였다.


카페는 내 상상 속보다 훨씬 컸다. 자갈이 깔린 넓은 주차장엔 차를 10대 이상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카페 안 곳곳에 식물이 가득했다. 자리마다 다른 탁자와 쇼파, 카페트가 깔려있고 빈티지와 세련됨이 적절하게 섞인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감탄을 자아냈다.
그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창가에 청순하게 자리한 덩굴식물이었다. 어떤 인테리어 사진에서 창가에 무심하게 놓인 그 덩굴식물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예뻐서 식물 이름이 궁금했으나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 식물이 바로 거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언니가 자리를 찾아 걸어갈 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저기 있는 덩굴식물은 이름이 뭔지 아세요?"
"마다가스카르 자스민이에요."
감사인사를 하고 언니 뒤를 따랐다. 드디어 그 덩굴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마다가스카르 자스민'.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었다. 나는 침실 벽을 꾸밀 생각을 했는데 해가 잘 안 드는 우리 집 침실에선 키우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일단 어떤 식물인지 이름을 알게 됐다. 나도 단번에 그 카페가 좋아졌다.


"여기는 커피도 맛있어. 이거 마시면 왜 여기까지 오는지 알걸."
언니의 말처럼 커피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넓고, 사람도 많지 않고, 인테리어도 예쁘고, 자리도 많은데 커피까지 맛있다니! 마치 사기캐를 보는 듯했다. 심지어 갓 구운 식빵마저 맛있었다.

하지만 다시 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구불구불했고, 부른 배에, 돼지 분변 냄새를 풍기는 가축운반차 뒤를 따라가며 나는 멀미를 했다.
역시 모든 게 완벽한 곳은 없는 모양이었다.


언니의 최애 카페를 떠올린 이유는 우리 집에서도 그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 개 후치는 햇빛 드는 곳을 좋아해서 이사한 이 집에 와서도 오전에 햇빛 잔뜩 드는 베란다로 꺼내 달라고 보챈다. 그럴 때 베란다 탁자 위에 푹신한 옷을 깔고 올려주면 거기 앉아 밖을 내다보다가 낮잠을 잔다. 내려오고 싶을 때는 '끙-'소리를 낸다.
오늘도 베란다로 나 있는 창문 앞에서 폴짝 뛰며 의사표현을 하기에 베란다 탁자 위로 올려줬다. 그 햇빛 가득한 베란다에서 엎드려 있는 후치를 보고 있자니 나에게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국수를 삶는 중이었다. 나무쟁반에 국수와 젓가락을 챙겨서 나도 베란다로 왔다. 이 집의 베란다에서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엔 밥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는데, 어제부터 넷플릭스를 보지 않기로 다짐하고 삭제했다. 대신 밥을 먹으면서도 심심하지 않도록 오디오 클립이나 팟캐스트를 듣기로 했다.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켜놓고 베란다에서 햇빛을 받으며 국수를 먹으니 오랜만에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겨울이었지만 햇빛 가득한 베란다는 창문을 열어놓아도 따뜻했다. 오히려 뜨거운 국수를 먹고 있자니 더운 기분도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내려서 베란다로 다시 왔다. 내가 좋아하는 오디오를 들으며 내 정원에서 커피를 마시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오늘 카페에 가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여기가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처럼 느껴졌다.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도 베란다로 가져왔다. 따사로운 햇빛 속, 바로 앞에서 강아지가 코 골며 자는 동안 나는 글을 썼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행복이 바로 옆에 있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모든 게 완벽한 건 없듯이, 우리 집 정원 카페는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2시가 안 될 무렵, 해가 저 앞 건물 뒤로 넘어갔다. 저 건물이 없어도 해는 곧 넘어갔을 거다. 동향이기 때문에.
햇빛이 사라지자 어두워진 베란다는 이제 춥다. 후치도 일어나서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한다.
동향인 베란다 정원에서 누릴 수 있는 한시적인 햇빛을 이제 매일 오전마다 우리 후치와 함께 누려야겠다.

 

우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베란다. 최근에 수술을 해서 넥카라를 쓰고 있다.
우리 강아지가 좋아하는 베란다. 최근에 수술을 해서 넥카라를 쓰고 있다.
햇빛을 즐기는 강아지
햇빛을 즐기는 강아지
햋빛이 사라지자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햋빛이 사라지자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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