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치과에 갔다. 몇 년 만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치과는 늘 피하고 싶은 곳이다. 이가 아프지 않으면 갈 생각을 아예 안 했다.
대학시절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서 충치를 치료하러 치과에 다녔었다.
마취를 하고 진행하는데 입천장을 찌르는 그 마취 주사가 너무나 아팠다. 속으로 고통을 삼키며 다시는 마취할 만한 일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었던 것 같다.
그 정도까지 썩기 전에 미리미리 치료해주고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치료가 다 끝나면 새까맣게 까먹고 만다. 다시 뭔가 잘못되어 치과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스케일링을 하러 방문했다. 스케일링도 미루고 미루던 일인데, 최근 들어 아래 앞니가 시린 느낌이 들어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내가 간 치과는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알게 됐는데, 스케일링을 하기 전 가글마취를 해서 덜 아프고,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평이 많았다.
치과 오픈 시간에 맞춰 갔으나 환자들은 이미 여럿 있었고, 나는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아서 삼십 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대기하면서 접수대 직원의 전화통화를 듣게 됐다.
얼핏 들으니 진료가 끝난 고객에게 진료비를 받아야 하는 상황 같았다. 그런데 할인된 진료비에 대해 고객과 병원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직원은 그걸 바로잡아 설명하고 그 고객에게서 진료비를 받아내야 했다.
"어머님~ 저 좀 봐주세요~ 저도 제 거 였으면 더 할인해 드리고 싶은데 제 게 아니잖아요~ 어머님~ 계좌번호 보내드릴 테니까 거기로 34만원 입금해주세요~ 34만원~ 34만원~"
짜증이 날 만도 한데 호호 웃으면서 설명을 반복하고, 넉살 좋게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그럼에도 병원 입장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며 '저런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있다니'하고 감탄했다. 내가 고객이었다면 그 전화를 받고 기분이 많이 상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치료를 받기도 전에 그 치과에 대한 이미지와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저런 인재를 직원으로 두고 있으려면 치과의사도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스케일링은 불편하지 않게 진행됐으며 다른 상담을 받을 때도 덤탱이 씌우려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설명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간 김에 치과검진도 받았는데 충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치과 간 지가 오래되어서 조금은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다. 난 지금 백수인데..
그럼에도 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시급한 것 먼저 치료하기로 했다. 충치 치료에 대한 아픈 기억과 거부감, 거금의 비용에 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진행되어 신경치료까지 하게 될까 봐 불안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그 병원의 친절함과 높아진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여 오늘은 충치 치료를 받고 왔다.
아플 것을 미리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그 몇년 사이 치과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마취 주사는 그전에 마취 크림을 발라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누워 치과의사의 얼굴을 보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였는데 그곳에선 구멍 뚫린 천으로 얼굴을 덮어주어 민망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해줬다.
아프지 않아서 그랬는지 치료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치아 안쪽 부분이 넓게 썩어서 많이 깎아내고 그곳에 보철물을 넣어야 했다. 오늘 치아 본을 뜨고 금요일에 다시 가서 그걸 씌우기로 했다. 그동안은 치료한 이빨에 임시로 뭔가를 씌워두었고 그쪽으론 음식을 씹지 말라고 했다.
점심땐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먹었는데 오른쪽으로 씹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별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충치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걸 아예 먹지 않는 거라고 하던데, 요즘 나는 뭔가를 입에 넣는 게 조금 무섭다. 충치가 생길까 봐 말이다. 양치질을 할 때도 안쪽까지 더 신경써서 꼼꼼히 닦는다.
치료해야 할 치아가 몇 개 더 남았는데 그 치과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거기서 다 해치워버릴 예정이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한 달에 한 개씩 처리해야겠다.
미리미리 치아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미래의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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